이번 포스팅은 하루키가 국내 언론사와 직접적으로 가진 인터뷰를 한 번에 정리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들을 보아오면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김난주 번역가와의 인터뷰의 존재는 알았지만 전문은 확인 못했고, 2006년 하와이에서 가진 GQ코리아와의 인터뷰는 엄밀히 말해서는 한국 언론과의 직접적인 인터뷰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가 다른 연유로 이런 저런 자료를 찾다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찾을 수 있었고, 하나하나 포스팅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인터뷰 내용과는 중복되지 않고, 특히 한국이나 한국 독자들에 대한 언급 위주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하루키 국내 언론 인터뷰(1995~2006) 재구성
- 95년 문예중앙 인터뷰 (김난주 번역가), 04년 문학사상사 인터뷰 (임홍빈 번역가), 06년 조선일보 인터뷰 (김광일 기자)
FH.com: 정말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 주셨습니다. 유럽에서 3년, 미국에서 5년 체류하셨다가 이번에(1995년) 귀국하셨는데, 아주 귀국하신건가요? 요 근 10년간 해외에서 작품 생활을 이어오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하루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가 있었어요. 비자의 유효기간이 다 끝나 일단 돌아와야 했죠. 한 동안은 일본에 있을 테지만, 글세요 언제 또 나갈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해외에 있는 것이 아무래도 집중적으로 일을 하기에는 외국에 있는 것이 아무래도 편합니다. 일본 내에서는 역시, 인간관계가 주 요인인 것 같아요. 일본에 있으면, 출판 관계자나 문학 관계자라든가 어느 정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데, 저는 별로 사람을 만나는 타입이 아니라 그 점이 가장 힘들답니다.
FH.com: 인터뷰를 수락하시면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말자고 하셨는데요. 정치적으로 어떤 신념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조건이라기 보단 희망사항이었어요. 예전에는 발언을 한 적이 있죠. 그것이 곤란한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어요. 물론 저는 정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리버럴리스트, 진보주의를 신봉해요.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 정치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의 우익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요.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보이기도 합니다. 생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는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 싶습니다.
FH.com: 이번에 귀국하시면서 바로 무라카미씨 고향인 아시야에서 자작 낭독회를 갖는다는 기사를 보고 미국 생활에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루키 씨가 견지해 온 태도로서는 좀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작 낭독회란 많은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일이니까요.
하루키: 일본에서는 개인으로서 살기가 힘들어요. 사회의 힘이 막강하니까요. 미국에서 생활을 해보니, 모두가 개인이라는 점이 전제 조건이라고 할까, 당연한 일이라는 관념이 있더군요. 개인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그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시점이었습니다. 몇 년이나 생활하면서 그런 사고 방식이 옳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본에 있으면, 어떤 환경이라도 자신은 개인으로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반대 방향의 발상을 할 수 있었어요. 개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밖을 향하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듯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고베 지역 대지진을 겪으면서, 뭐랄까 전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했고, 그래서 낭독회라는 방식이라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로 자신을 좀 더 열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단,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역시 사회와 관련을 맺고 싶은 생각이 있답니다. 물론 위에서 얘기했드시 미국 생활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연령적인 이유도 있어요. 이미 마흔 여섯 살이니 그리 젊지는 않죠. 젊었을 때와는 다른 삶의 양식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느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나는 68년, 69년의 학생 분쟁 시대에 18,9세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학생 분쟁이 중심적인 논제였어요. 하지만 그 당시의 좌절감이나, 그 운동이 실패한 것에 대한, 혹은 정치에 대한 불신감 같은 것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로부터 25년 세월이 흘렀는데, 우리들이 그때 체험하고 느낀 것을, 지금 이 나이에 다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FH.com: 바로 그점이 한국의 학생 혹은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인데요. 한국은 80년대의 정치 소용돌이를 지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정치 상황이 급변하여 일반적으로 그 시대에 대한 관심의 밀도가 엷어졌습니다. 그래도 학생층에서는 한 쟁점을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앞 시대에서 학생 운동을 경험한 하루키 씨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였는가 알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하루키: 당시 우리들이 한 일은, 전후의 이상주의라는 것이 있었어요. 평화 헌법이 제정되어, 전쟁을 포기하였지만, 그 정신이 점점 무너졌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지켜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안보, 반전, 즉 베트남 전쟁 반대라는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믿었고, 우리가 운동을 하면 세상의 평화 기조가 유지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죠. 국가라는 막강한 권력에 의하여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1968년에서 70년에 걸쳐 우리가 했던 일은, 당시의 사회체제에 대해 ‘NO’라고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으로 대표되는 경직된 냉전체제에 대해 ‘NO’라고 외치고, 우경화해가는 일본 정치 시스템에 대해 ‘NO’라고 외쳤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고도 경제성장 하에서 이상주의를 잃어가는 정신상태에 대해 ‘NO’라고 외쳤습니다. 흔히들 마르크시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지향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했던 것은 결국 조금이라도 큰 목소리로 ‘NO’라고 외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의 문제점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YES’인지를 명확하게 내세우지 못했던 점입니다. 제가 그 시절에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아름다운 말로 강력하게 말하는 일은 일단 신용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그런 말에 현혹되면 대체로 혹독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는 가능하면 호언장담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FH.com: 그러나 작품에 한해서 말하자면, 무라카미씨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상당히 냉소적이며 관망하는 입장에서 학생 운동을 얘기하고 있는 듯한데요. 예를 들면 와타나베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의 하루키 씨는 어땠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거죠.
하루키: 소설은 픽션이니까 제 자신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소설은 주인공의 입장을 알기 쉽게 써야 할 필요가 있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제 자신의 감정은 학생 운동과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주의자라서 누군가와 함께 손을 맞잡고 하는 집단적인 행위는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혼자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할수 있는 일이란 그리 흔치 않지요. 그런 자신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물론 저도 시위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경찰과 사투를 벌인 적도 있고 최루탄 가스를 마신 일도 있지만, 그런 일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에요. '허무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척 놀라곤합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은 혼란이나, 고독, 상실을 헤쳐가고 있지만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그들이 구원받는 광경이 아니라, 구원 받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것을 이루는 광경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홀로 어둠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게임의 룰'입니다.
FH.com: 한국의 윗세대 작가들은 지금의 젊은 작가들을, 한국의 전통적인 소설 양식을 파괴한 주범이라 여기고, 그런 새로운 시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건 일반 독자들을 비롯하여 젊은 세대 작가들까지 하루키 씨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지금 한국 문단은 80년대 학생 운동을 경험한 젊은 작가들이 장악하다시피 했거든요. 그런 점에서 하루키씨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하루키: 일본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예요. 제 소설에 대한 비판 역시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학생 운동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그다지 얘기하지 않는 것은 환멸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대해서 정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죠. 자신들이 정말 옳았던가 하는 의문과 환멸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전에 보스턴에서 하버드 대학에 있는 한국의 문학평론가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젊은 작가와 그 윗세대의 작가들 사이에 단층이 크고, 제 작품이 젊은 작가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들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은 옳았다고 생각 합니다. 단 제가 가장 환멸을 느낀 것은 역시 조직입니다. '우치게바'란 것이 있죠. 당파간에 서로 주도권을 쟁탈하려 파벌 싸움을 벌이는, 그 싸움이 치열해져 연합 적군이 되었는데, 그런 종류의 환멸, 그리고 한 그룹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히에라르키(계급. 계층을 이르는 독일어)가 출현합니다. 난 그런 것을 원하지는 않았어요. 말솜씨가 좋은 특정 인물이 조직 안에서힘을 키워가는, 전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FH.com: 한국의 학생 운동이 변질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한국 학생 운동의 전성기가면 역시 80년대라고 할 수 있죠. 60년대는 반일적인 성격이 강했고, 70년대에는 반독재, 그리고 80년대로 넘어갑니다.
하루키: 광주 사건은 언제였나요?
FH.com: 80년이죠.
하루키: 한, 10년 정도의 차이가 있군요.
FH.com: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정치적인 흐름과 거의 병행하여 문학의 흐름도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성기로 90년대 나타난 작품들은 작품으로서 설립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이념이나 고발적인 요소를 품고 있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었죠.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80년대의 문학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고, 대중은 좀 더 신선한 것, 자극적인 새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무라카미씨의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시대적 배경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노르웨이의 숲>이 발표된 지 얼마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도 번역 되었어요. 하지만 그 당시의 번역본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80년대 말을 경계로 하여 표층적으로는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의 작가들이 새로운 흐름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일반 대중들의 관심은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하고 첨단적인 방향으로 재빨리 방향을 틀었죠. 마침 그런 때에 하루키 씨의 문학이 국내에 들어와 자리잡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루키: 결국 일본의 경우, 패전 후에는 마르크시즘과 반마르크시즘이라는 이념적인 두 기둥으로 성립되어 있었어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마르크시즘 쪽이었죠. 오에 겐자부로 씨를 비롯하여. 그러나 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특히 소련의 붕괴를 기점으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일본의 지식인들은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모두들 무엇에 기대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죠.
FH.com: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갑자기 화제가 바뀌지만, 최근에 한 여학생이 인생을 비관하여 자살을 했는데, 그녀는 무라카미씨의 소설에 심취해 있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키: 안타까운 일이군요. 하지만 이 점만은 알아 주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죽어 갔어요. 우리들 세대는 70년대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고, 그래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나는 자살을 장려할 마음도 없고, 미화시킬 마음은 더더욱 없지만, 있었던 사실과,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FH.com: 지금 한국에서는 <노르웨이의 숲>이 대중적으로는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데, 여자주인공들의 죽음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그 소설에 대해서 여성 취향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작품 속에서 지향하는 여성상이 혹시 있습니까?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은 내 소설의 본류와는 좀 다른 위치에 있는 작품입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더불어 나는 이 두 작품을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비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르웨이의 숲>을 나의 대표작인 듯 얘기하는 것은 좀 뭣하군요. 여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단 어차피 쓰는 거라면 아름답게 쓰고 싶어요.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수긍할 수 있고, 호감을 느낄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여성을 그리고 싶다는 정도입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까 한 얘기에 이어, 나는 70년을 지나고 부터는 정신적인 기둥없이 살아왔습니다. 마르크시즘이나 학생 운동에 대한 환멸로 인하여 그 기둥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같은 시대를 나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셈입니다. 그런 부분이 내 소설을 결정짓는 큰 요소일 것입니다. 최근에는, 앞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생각합니다. <태엽감는 새 연대기>에서는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나의 아버지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중국에서 전쟁을 치른 세대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 시대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만주 얘기라든가 시베리아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요즘에는 단적으로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FH.com: 그렇다면,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앙가주망' 정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를들면 일본 작가로는 오에 겐자부로씨를 들 수 있겠죠.
하루키: 60년대에는 오에 씨의 작품을 좋아하였고 많이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전혀 읽지 않고 있어요. 그 이유는 오에씨를 훌륭한 작가로 존경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것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모노가타리(이야기성:스토리텔링에 해당하는 일본말)입니다. 모노가타리를 씀으로 하여 자신속의 무엇을 발견 할 수 있는가, 오에씨가 쓰는 모노가타리에 대해서 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오에씨를 평가 하느냐 아니냐 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에 씨가 쓰는 모노가타리는 내가 쓰고자 하는 모노가타리와 다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쓰고자 하는 모노가타리는 나자신이 납득할 수 있고, 나 자신을 쓰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한 세대에는 그 세대를 위한 모노가타리와 모노가타리를 쓴 작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에 씨는 나보다 윗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FH.com: 무라카미씨의 작품에 대해서 국적이 없다든가 아이덴티티가 모호하다는 등의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루키: 글쎄요. 국적이 없다기보다는, 나는 '추상성'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추상적인 것을 그리려는데, 현실에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상성이 개입되면, 추상성이 상실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능한 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소설의 세계를 구성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점을 꼬집어 무국적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무국적적인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죠. 다만 나는 일종의 추상성을 획득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가공의 세계라고 표현해도 무방할텐데요. 요컨대 여기에 한 상황이 있다고 하죠. 거기에 한 사람이 들어가 그 상황과 관계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일본인인 나라도 상관없고, 한국인 김씨라도 상관없고, 미국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이 상황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며 그런 관계속에서 상황이나 인간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쓰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며 상황과의 관련에 의한 변화였습니다. 미국인 독자로부터 편지가 오곤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그 작품이 일본인이 쓴 일본 소설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들 이야기를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썼더군요
또한, 저는 10대 무렵부터 외국문학을 중심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정통적’인 일본문학이 봉착하기 쉬운 문제점을 여러 가지 면에서 잘 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일본어로, 일본을 무대로,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일본문학입니다. 무국적 소설을 쓰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른바 ‘일본문학적인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을 뿐입니다. 저는 문학적인 약속 같은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남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남과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말에 아주 공감합니다. 자신만의 말과 자신만의 글을 발견하는 것은 작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FH.com: 그러나 추상성을 지향하는 경향 역시 그 나름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요. 특히 최근에 발표된 <태엽감는 새 연대기>가 처음 잡지에 연재되었을 때 일인데요, 역사라든가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 놀랐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테마가 오래도록 하루키 씨 안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는데요.
하루키: 그렇습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옛날 작품에는 로큰롤이라든가 고유 명사가 빈번하게 등장했는데, 그런 요소도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고, 특히 외국 생활을 하게 되고부터는, 일본이란 무엇인가, 일본인이란 무엇이냐 하는 방향으로 관심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도 바뀌어 갈 것이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의 문화가 굉장한 속도로 상호교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가조에 시게라는 일본 작가는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 나라의 문학을 해야 한다는 문학적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넘나드는 문학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런 문화적 상황 속에서 각자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한 가지는 지역성 안에서 구멍을 파내려가듯 문제를 연구해 나가는 것이고, 또 한 가지 길은 바깥을 향하여 자신을 풀어놓는 것이죠. 어느 쪽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처음에 나는, 바깥을 향하여 열린 문화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FH.com: 일본 작가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고들 흔히 알고 있는데, 아까 오에 씨의 소설을 고등학교 시절에 꽤 읽었다는 말씀을 하여 뜻 밖이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소설 양식인 사소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루키: 오에 씨의 소설은 비교적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외에는 별로 읽은 게 없군요. 작가로서는 아베 고오보를 좋아합니다. 사소설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큼 싫어합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분야의 소설이에요
FH.com: 그런데 반해 외국 문학은 탐닉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번역 작업도 많이 하였고, 스콧 피츠제럴드나 레이몬드 카버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은 것으로 하루키씨 자신도 얘기하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하루키: 누구든 한 사람쯤 히어로를 갖고 있지요.가령 에릭 클랩턴처럼 기타를 잘 치고 싶다든가, 누구누구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든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목표로 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어로 된 문장을 읽고 번역하면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일본인 중에는 나의 문학적 스승이 없습니다. 번역이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당신도 번역을 하고 있으니 잘 알겠지만 번역을 하다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의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65편을 10년에 걸쳐 전부 번역했는데, 참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FH.com: 무라카미씨의 작품을 읽은 한국의 여성 독자들은 무라카미씨가 상당한 연애전문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아이는 없으시죠?
하루키: 무슨 그런 말씀을, 전혀 그렇지 않아요. 먼 옛날 일입니다. 연애를 해 본 것이. 결혼한지 벌서 25년이에요. 잊은 지 오랩니다. 요즘은 녹이 슬어서 틀렸어요. 나는 여자 앞에 서면 긴장을 해서 말도 제대로 못합니다. 아이는 맞는 말입니다. 원래 저나 제 아내는 좀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또 하나, 70년대의 환멸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한 장소인가하는 데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저도 그렇고 제 아내 역시 부모님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런 경우 지신의 아이를 낳는 일에 자신감을 갖기가 힘들죠. 뭐 그런 저런 이유들로 아이를 낳지 않고 있습니다.
FH.com: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는 하루키씨의 작품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는시각도 있습니다.
하루키: 음, 내가 내 소설 안에서 가장 쓰고 싶은 것은 모럴입니다. 모럴을 유지하기가 몹시 곤란한 세계입니다.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모럴을 지니고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것이 사실은 내가 가장 쓰고 싶은 테마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그때 나는 무슨 일을 해야만 했던가,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되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일을 계속 쓰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점차 조금씩 이런 게 아니었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되고 인간은 모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상당히 성실한 인간 같아 보이는데(웃음),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전혀 다른 모노가타리로 그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노르웨이의 숲>만 해도 그 소설을 어떤 의미에서는 모럴한 소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데......,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섹슈얼한 장면이 부도덕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중의 인물들이 모럴리스틱하게 살려고 했기에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FH.com: 한국의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가 월간 ‘현대문학’ 6월호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감상적인 허무주의를 깔고 읽기 쉽게 쓰여진, 성적 일탈자와 괴짜들의 교제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고 말이죠.
하루키: 그 소설이 읽기 쉽게 쓰여진건 사실이죠. 그저 '읽기 쉽게 쓰여 있는' 것을 혐오하는 비평가는 세상에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읽기도 쉽고 내용도 깊이 있는 소설'이에요. 반면 가장 읽기 싫은 것은 '읽기도 어렵고 내용도 빈약한 소설'입니다. 일본에서는 그런 비평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어요. 몇 년 전 독일 TV에는 독자 토론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중 너무 뜨거워져 싸움이 났고, 결국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웃음)
FH.com: 작중의 등장 인물들이 고도 자본주의 사회를 대변하는 듯한 사람의 양식을 취하고 있고, 서구 사회의 전문가적인 태도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인물들이 현대와 같은 사회를 극복하기에 적합한 인간형이라고 봅니까?
하루키: 결국 나는 학생 운동이라는 집단 행위에 대한 불신감이 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내내 회사에는 취직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일을 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 삶을 견지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보통 대학을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하여 샐러리 맨으로 그 시스템에 속해 살아갑니다. 나는 그렇지 않았고, 혼자 힘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년이나 가게를 하다가, 그 다음은 소설가가 되어 개인으로 자립해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고독한 생활을 하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고독하게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서로 도움을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강렬합니다.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은 것을 거부하며 자칫 고립되어 전혀 인간적인 교류가 없는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론 고독하고 자립한 개인이지만, 그런 가운데서 어떤 유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관계를 끊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없는 고립된 상태에서 상대방과의 연관을 찾아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경우입니다.
FH.com: 사람이면 누구나가 자기가 아닌 타인과의 대화를 원하죠. 그런 반면 그런 바람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상처를 입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는데, 무라카미씨의 주인공들이 그런 인간의 면모를 절묘하게 대변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는 면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요.
하루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일종의 판타지라고 생깍해요. 한 인간이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혼자살아가면서, 동시에 모럴을 지니고 타인과의 대화를 원하는 그 자체가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줄곧 살아왔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판타지나 모노가타리가 결국은 현실을 움직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판타지나 모노가타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일종의 샘플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고 할 때 샘플이 없으면, 아무런 이미지도 품을 수기 없지요. 그러나 가령 판타지든 무엇이든 형태를 이루고 여기에 존재할 때,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피부로 느끼며 확인할 수가 있지요. 그런 것을 제공하는 것이 모노가타리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나의 소설은,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도회지에서 생활하는 고독한 사람들, 개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샘플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FH.com: 개인적으로 친구 중에 하루키 씨의 팬이 있는데, 작품을 읽고 나면 술을 마시고 싶어지거나 섹스를 하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건 왜일까요?
하루키: 제가 그런 식으로 쓰고 있으니까요. 나는 피지컬하게 읽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육체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소설이 지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섹슈얼한 장면이 전개될 때는 읽는 이들이 섹스해 주기를 바라고요. 역시 맥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맥주가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쓰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의 축척으로 커다란 일이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 일화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일본의 한 여성 독자한테서 편지가 온 일이 있습니다. 18, 9세의 젊은 여성인데,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어요. 그는 학교의 기숙사에 있고, 그녀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더군요.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고 나니 새벽 3시쯤인데, 그를 무척 만나고 싶더랍니다. 만나서 섹스를 하고 싶어진 거죠.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기숙사의 담을 넘어 2층에 있는 그의 방에 기어올라가서는 섹스를 하였다는 편지였어요. 나는 그 편지를 읽고 상당히 기뻤습니다. 내가 쓴 글이 그 정도로까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죠.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좀 더 깊은, 좀더 다른 부분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도 생각할 수 가 있죠.
또한, 섹스는 사람 마음의 자물쇠를 여는 장치입니다. 저는 그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어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서는 꼭 필요한 장치입니다. 사실 그런 묘사를 하려면 저도 무척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야기 전개상 필요하다면 쓸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적인 것을 묘사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겁니다.
"조선 일보와 독자 여러분을 위하여, 한국의 독자 여러분이 제 책을 열심히 읽어주시는 것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설을 즐겁게 기다려주십시오."
FH.com: 대개의 소설들이 겨울에 쓰기 시작하여 봄에 탈고하였는데, 그런 데서 어떤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창작 활동을 신체적으로 춤을 추는 듯한 리듬감으로 즐기며 하는지요? 한국 작가들의 경우 소설을 쓰기 위하여 몸을 단련하거나 하는 일은 듣지 못했습니다. 담배는 여전히 끊으신 상태인지요.
하루키: 무언가를 쓴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힘들고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 다음은 즐거워집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여 매일 뛰고 있는데, 일년에 몇 번은 풀 마라톤을 뛰기도 합니다. 장거리 수영도 좋아하는데, 그런 장거리 마라톤이나 수영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분이 고조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가 있어요. 나는 춤은 잘 모르니까, 춤보다는 운동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편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성격적으로 장편이 맞아요. 장편 소설을 쓰는 데는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거든요. 제가 굉장한 재능이 있다거나 훌륭한 문장을 갖고 있다거나 머리가 상당히 좋다든가 하는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나는 어느 면에서나 자신이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어찌되었든 자신의 몸을 단련하여 건강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담배는 전혀, 끊었습니다. 술은 조금씩 마시지만 역시 달리기를 하여 체력을 단련하는 작가가 나 외에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건강하기만 했더라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작가들이 있죠. 얼마 전에 죽은 나카가미 겐지 같은. 나는 나카가미 겐지는 상당히 훌륭하고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역시 말년에는 병을 앓아 작품생활도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요. 정말 애석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건강은 중요한 요건입니다. 나는 일본작가 중에서는 나카가미 겐지와 무라카미 류 씨를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인 나카가미 씨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FH.com: 한국 소설을 읽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 때, 한국에서는 무라카미씨의 작품을 모방하여 어떤 신인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여 크게 문제가 된적도 있었답니다.
하루키: 유감스럽게도 없군요. 나는 옛날에는 책을 꽤나 읽었는데, 스스로 소설을 쓰게된 이후로는 별로 읽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책만 많이 읽고 운동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체육시간에는 어디에 숨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지금은 정반대이군요. 미국에 있으면서 대학생들, 특히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재미있는 현상은 젊은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무 살 정도의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들이 나의 책을 읽고 얘기해 주는 감상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동아시아인들 사이의 문화적 교류는 훨씬 활발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한국인 남학생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를 가야 된다고 고민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강의를 하며 절감한 것은 미국이나 유럽의 독자들과 동남아시아의 독자들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고 방식은 물론이고, 동남 아시아의학생들과는 어떤 단계를 밟아 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글쎄 이런 식으로 간단히 얘기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의 문학을 번역하면서 감정을 교류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동아시아 시장은 앞으로 더욱 크게 확대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또한, 제 소설은 비교적 초기부터 한국 독자들에게 따뜻한 지지를 받아왔으며, 그 점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미국과 유럽에 소개되어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물론 기쁜 일이지만, 한국이며 대만,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의 문화적인 시장이 최근 10여 년 동안 크게 성장하고 성숙해진 점과, 그런 가운데 저의 작품이 장기간에 걸쳐 널리 좋은 평가를 받아온 것은 더더욱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신인 작가의 모방문제는, 이렇게 봐주심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라는 것은 모두가 모방을 하게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 영향을 받아 쓴 몇몇 작품을 지금 새삼스레 읽어보면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만의 것이 조금씩 조금씩 나오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모방했다고 그렇게 비난은 하지 말아 주세요.
FH.com: 무라카미씨의 작품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설정, 즉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상황을 자주 묘사하시는데, 이번의 <해변의 카프카>에도 그런 장면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물론 작가로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그런 설정을 하셨겠지만, 이 점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하루키: 제가 소설에서 표현하려는 것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세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현실적으로 묘사해도, 그 중심에 있는 것(즉 현실을 현실답게 하는 것)은 잘 부각되지 않습니다. 현실을 일단 완전히 해체하여 자신의 정신 속에서 다시 한번 새롭게 바꿈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현실성을 띄게 됩니다. 제가 새롭게 다시 만든 것은 언뜻 보면,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며,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면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묘사하고 싶은 것은, 실제의 현실 이상으로 사실적인 현실입니다. 작품 속의 그런 초현실적인 것을 ‘난해한 포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가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제가 쓰는 이야기에(일부를 제외하고는)는 그런 과장되고 과격한 비유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제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절실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 깊숙한 부분은 어둠으로 덮여 있으며, 거기서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밝은 영역에서의 논리로 그런 영역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들면 입구의 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저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돌의 모양이나, 무게, 또는 감촉에 대해서는 몇 페이지에 걸쳐서라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란 그런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전개는 써나가는 동안 자연히 떠오릅니다. 저는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을 씁니다. 그렇게 해야 자연스럽게 상상력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고 궁금한 마음으로 내 책을 읽고 있다면, 그건 소설을 쓰고 있을 때의 내 마음과 같습니다
FH.com: <해변의 카프카>에 대해서 더 듣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모티브로 삼기도 하셨는데요.
하루키: 네,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사용하긴 했지만, 같은 이야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쓰고자 했던 것은, 한 소년이 깊이 있고 선량하게 성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해변의 카프카》는, 새로운 가족형태에 대해 실제와 아주 흡사하게 재생하려 한 소설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개인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주로 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취급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쩌면 이제는 새로운 의미에서의 ‘가족’ 또는 ‘공동체’를 추구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가족형태에 대해 실제와 아주 흡사하게 재생하려 한 소설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개인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주로 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취급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쩌면 이제는 새로운 의미에서의 ‘가족’ 또는 ‘공동체’를 추구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작가로서의 모든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점은 설명적이지 않으면서, 어디까지나 묘사적으로 인간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독자를 끌어들이는 점입니다 그것은 지하일 수도 있고, 바다 밑바닥일 수도 있으며, 사랑이 없는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이며, 《해변의 카프카》는 그 점에 나의 온 정신을 집중한 내 작품 중 가장 내 스스로 만족한 작품입니다. 나카타 상과 카프카 군은 소설 속에서는 한번도 만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15세의 소년인 카프카 군이 만난 적이 한번도 없는 나카타 상의 무구한 영혼에 의해 치유되고 점점 내면의 깊이를 더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요? 저도 물론 나카타 상에게 깊이 공감하며, 고양이와 이야기도 나누고 싶습니다.
FH.com: 무라카미씨 작품들은 감성에 바탕을 둔 인생담론과 서정이 넘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문장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라카미씨는 레이먼드 챈들러, 혹은 폴 오스터 같은 다소 하드보일드한 리얼리즘 쪽 작가를 칭찬한다. 이 격차는 왜 생기는걸까요?
하루키: 독서는 독서고, 집필은 집필이라고 생각해요. 두가지는 다른 것이죠. 그러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FH.com: 마라톤은 왜 자주 나가시나요?
하루키: 전 풀코스 마라톤을 26번 완주했어요. 보스톤 마라톤에만 7번 나갔죠. 100킬로미터 마라톤에도 참가했고, 철인 3종 경기도 몇 번 나갔답니다. 모두 신체의 강도를 높이기 위함이에요. 그래야 집중력과 지속력을 높일 수 있고, 보다 우수하고 장대한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경기 후에 마시는 한 잔 맥주가 맛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FH.com: 항상 이렇게 심플한 차림이신가요?
하루키: 보통은 반바지를 입는 때도 많아요. 오늘은 인터뷰가 있기 때문에 긴바지를 입었죠. 제가 넥타이를 매는건 1년에 2번 정도에요. 제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4가지 말할 수 있는데요. 넥타이를 안 매는 것, 출퇴근이 없는 것, 회의가 없는 것 그리고 상사가 없는 것이랍니다.
FH.com: 끝으로,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한국에 하루키 씨의 작품이 어느 정도 번역되어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87년 이후 작품에 한해서는 저작권법 계약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알고 계실 테지만, 그 이전의 작품까지도 거의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 저작권법에 가입한 것이 87년이어서 그 이전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권 계약 없이도 출판 할 수 있거든요.
하루키: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나의 작품을 읽었다는 한국인 학생들을 몇몇 만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절차를 밟아 저작권 계약을 하고 있고, 이전 작품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제 소설이 한일 양국 국민들의 우호적인 관계에 조금아니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얼마 전에 보스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만(마라톤을 하기 위해), 거리에서 많은 한국의 젊은 독자들이 제게 말을 걸어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도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저를 알아보고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한국에 꼭 가보고 싶지만, 아무도 모르게 가고 싶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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