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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무라카미 라디오' 50회 방송 기념 아사히 인터뷰

이번 인터뷰는 하루키가 18년 부터 진행한 도쿄 FM의 무라카미 라디오 50회 진행 기념으로 아사히 신문과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2018년 무라카미 라디오를 진행하기 시작한 하루키는 같은 해 기자회견을 통해, 와세다 대학에 '무라카미 라이브러리'를 오픈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펜데믹으로 인해 라이브러리는 21년 10월 공식 오픈하게 되었고, 조용히 운영되다가 펜데믹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촤근에는 라이브러리를 활용한 다양한 행사를 하루키 스스로 기획하기도 하면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답니다. 

그런 일련의 행사 중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이, 와세다 대학 오쿠마 강당에서 진행된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의 프리재즈 연주였습니다. 하루키 팬이라면 모두가 알고 계실 1960년대 일본 전공투 운동이 있었는데요. 대학의 비리 문제로 시작되어 대학과 정치권을 위시한 기존 권력에 대항하는 학생 운동으로 크게 번졌죠. 물론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다른 정파들로 분열되고 과격화 되면서 끝은 좋지 않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목표로 한 학생 운동으로서의 기운은 아직까지 남아 있죠. 

 

https://news.yahoo.co.jp/articles/7eef8818112cddcd8bbc80954b2a8882a14ae799/images/000

 

이런 전공투 운동의 한 가운데였던 1969년 7월 와세다 대학 4호관에서 진행된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피아노 야마시타 요스케, 색소폰 나카무라 세이이치, 드럼 모리야마 위남)의 프리 재즈 연주는 당시 학생 운동의 상징으로서 지금도 회자되곤 합니다. 그 연주를 바로 하루키의 기획으로 지금의 와세다 대학에서 재현한 것이고요. 이 연주 실황은 레코드로 발매까지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이런 배경 아래에 진행된 이번 인터뷰는 하루키가 미국 메사추세츠주 웰즐리대학에 4개월간 체류하는 동안에 일부 내용에 대해 이메일로 응답을 하고, 체류 일정이 종료되어 일본에 귀국하자마자 추가 진행된 인터뷰가 합쳐진 내용입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7eef8818112cddcd8bbc80954b2a8882a14ae799/images/000

 

【特別インタビュー】村上春樹が語った60~70年代、音楽、若者へのメッセージ〈週刊朝日〉 (AERA

村上RADIOのスタジオで(TOKYO FM提供) - Yahoo!ニュース(AERA dot.)

news.yahoo.co.jp

 

Q: 무라카미씨는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의 개관전 기자회견을 통해 54년 전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의 라이브 연주를 회상하셨었는데요.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 전설의 라이브가 언급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루키: '무라카미 라이브러리'는 와세다 대학의 4호관을 개장한 것입니다만, 1969년의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 난입 연주 사건은 역시 당시의 4호관(현재 8호관이 있는 장소)에서 행해졌답니다. 물론, 현재의 4호관과 당시의 4호관은 위치는 다르고 이름만 같은 것이지만, 이것도 역시 무언가의 인연으로 여겨져 당시의 야마시타 트리오의 난입 연주 사건과 같이 어떤 강한 에너지가 캠퍼스에 반입된 것과 같은 기운을 현재의 이곳 4호관에서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대학이라는 곳은 조용히 배우는 장소일 뿐 만 아니라, 여러가지 것들이 교란 하는, 활기차게 오고가며 흐트러트리는 장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중성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지금의 캠퍼스에 재현하고 싶었답니다. 

 

Q: 1968년 고베를 떠나와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셨습니다. 도쿄에 온 직후 먼저 신주쿠의 재즈바 피트인에 갔다고 알고 있는데요. 당시는 어떤 삶을 살고 계셨나요?

하루키: 1968년 부터 1970년 정도까지의 도쿄는 완전한 혼란 속의 도시에서 모든 것이 자극으로 가득했습니다. 뭐든지 있었다랄까요, 마치 장난감 상자를 뒤짚어 쏟아 놓은 것 같은 스릴로 가득했어요. 낡은 가치관이 힘을 잃고 자유롭게 호흡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이 말이죠. 물론 그런 것들이 일종의 착각이었고,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말이에요. 그런 착각이라던지 환상이라던지가 확실한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던 시대 였음엔 틀림 없었습니다. 당시의 피트인 재즈바는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 뒤편에 있었는데요. 정말이지 에너지가 가득한 장소였어요. 거기에 가면 뭔가 일어난다라는 기대감이 있었다랄까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재즈도 락도 빠르게 변화하면서, 그런 시대의 흐름에 겨우 겨우 따라가기에 급급해하며 시간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재미있던 시대였어요. 모두 장발에 수염을 길렀죠. 그 무렵 모두가 모이는 장소가 바로 신주쿠였어요. 저도 신주쿠의 거리에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도 하고, 가부키쵸의 도에이 극장에서 매주 야쿠자 영화를 봤죠. 

 

Q: 전설의 라이브 공연이 재현된 2022년은 펜데믹이나 우크라이나 군사 침공 등 세계의 혼란이 극에 달았던 시기 였는데요. 이 공연을 기획한 프로듀서로서 이 이벤트에 어떤 메세지를 담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코로나 펜데믹 가운데 진행된 콘서트였습니다만, 코로나가 잠시 태풍의 눈 처럼 잠잠했던 시기에 진행되었던터라 어떻게든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모두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도 콘서트가 성공리에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국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기로 인해 기분이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시기에, 선한 음악의 힘이라든가, 그런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야말로 그런 시기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통감했습니다. 

 

Q: 2018년 첫 방송을 탄 '무라카미 라디오'가 방송 50회를 맞이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것을 더 하고 싶으신지요?

하루키: 모두 이루었다랄까요.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웃음) 단지 문득 문득 떠오르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에요. 몇 회를 해왔는지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죠. 앞으로도 어떤 계획을 가지고 해 나갈지 신경을 크게 쓰지는 않겠지만, 하고 싶고 틀고 싶은 음악도 여전히 많고 이런 컨셉의 방송을 하고 싶다라는 것도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여전히 계속 방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곡을 틀고 싶어도 음반을 찾아 오는 것이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저는 재즈 앨범에 대해서는 전부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어서, 어떤 곡이 어디에 있는지 머리 속에 들어가 있지만, CD 앨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웃음) 

 

Q: 무라카미씨가 무라카미 라디오를 시작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주변 친구들 몇몇이 무라카미씨는 집에서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을 즐긴다라는 얘기를 해주었는데요. 그 스탠스는 지금도 변함이 없으신가요? 

하루키: 재즈바를 그만 두고 나서 부터는 쭉 혼자 집에서 음악을 들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슬슬 누군가와 다시 함께 들어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야말로 혼자 있는 것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에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을 꽤나 즐겨왔지만, 역시 인간이라는 것은 점점 변해가는 것일까요. 지금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듣는 음악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Q: 무라카미 라디오 녹음 당일이 되어 공개되는 하루키의 플레이 리스트는 모든 청취자가 잘 알지 못하는 곡을 트시는데요. 그 대상이 이른바 신곡만이 아니지요. 이런 면이 무라카미씨가 DJ를 하는 프로그램만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 반면에 올 4월 스가 시카오씨와 공개 녹음을 했을 때에는 모두가 아는 유명한 곡이 걸렸지만, 둘이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그런 속에서 곡에 대한 새로운 신선한 느낌이 나오게 되죠. '그런가? 이렇게 듣는 방법도 있구나.' 라든가 '이런 느낌도 있구나.'라고 알게 되는 거죠.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에서 파생된 또 다른 라이브 실황 'Murakami Jam'이라는 이벤트도 몇 차례 열렸는데요. 어떤 생각으로 기획하시게 되었나요? 

하루키: 저는 재즈바를 운영했을 때, 라이브 연주도 함께 했기 때문에 라이브 연주는 익숙했어요. 음악이라는 것은 레코드로만 계속 듣고 있으면 치우치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가끔은 라이브 음악을 들어야 음악 듣기에 밸런스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방송 역시 라이브 음악을 간간히 섞지 않으면 '산소 결핍'의 상태가 된다고 생각해요. 바깥 공기를 주입시켜야만 해요.  

 

Q: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의 오쿠마 강당 난입 라이브도 그런 기획의 일환 인가요?

하루키: 음, 조금 흔들어 본다랄까요. 매월 방송을 통해 제가 얘기하고 음악을 틀기만 하는 방식을 계속 하게되면 뭔가 굳어져 버린다랄까요. 때때로 그런 루틴을 흔들어 이런 저런 다양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이라는 것은 좀 처럼 움직이려는 습성은 없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젊은 세대가 얼마나 제 방송을 듣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연스레 보통은 들을 수 없는 음악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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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무라카미 라디오의 청취자는 10대도 꽤나 많다고 합니다.

하루키: 어쨌든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주고 방송을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능한한 Spotify로는 검색이 되지 않은 음악을 걸고 싶죠. 대부분이 검색이 되긴 하지만요. (웃음) '이 음악은 Spotify에 없어요.'라는 반응이 오면 뭔가 기쁘답니다. 

 

Q: 야마시타 요스케 난입 라이브 실황을 '무라카미 라디오 라벨'로 아날로그 레코드로 발매하셨는데요. 누구에게 이 연주 실황을 전하고 싶으실까요?

하루키: 한정된 관객을 대상으로 한 한 번의 공연이었지만, 정말로 멋지고 충만한 연주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프리 재즈'라고 하면 왠지 어렵게 들리지만, 말 그대로 '자유로운 음악'이에요. 특정 카테고리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는 자유로운 음악으로서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시대와 유행을 넘어선 음악으로서 말이에요. 이 앨범에 라이너 노트도 직접 썼답니다. 

 

Q: 많은 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네요.

하루키: 야마시타씨의 음악의 진수는 역시 자유로움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자유로움은 높은 시간의 벽을 넘나들죠.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도 제대로 마을을 넓여서 자연스럽게 귀를 맑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음악을 듣고 바로바로 비평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지만, 그런 지엽적인 비평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단지 자유롭게 음악 그 자체만을 듣고 싶네요. 

 

Q: 야마시타 트리오 연주회 당일에는 대학생 세대들에게도 큰 호응이 있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하루키: 젊은 세대요. 이제 저는 잘 모르죠 (웃음) 그러니까 저는 예전 부터 항상 제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젊은 시절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선명한 추억을 가능한 많이 만들어 두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 그렇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중요한 연료와 같은 기능을 하게 될 겁니다. 소셜 미디어 같은 것도 편리하고 유용하지만, 오감을 제대로 사용한 피지컬한 추억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런 것들은 의외로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뛰어난 라이브 음악을 듣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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