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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통신/하루키 뉴스

하루키 와세다 대학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설립 기자회견 전문

다소 놀라운 소식이 어제 도쿄 와세다 대학으로 부터 전해졌습니다. 기사 타이틀은 '무라카미씨 37년만의 기자회견'이라는 놀랄만한 내용이었는데요. 사실 그 회견의 내용이 더 놀라웠답니다. 이미 국내 언론에서도 많이 기사화되어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하루키가 워드프로세서로 작업을 하기 전, 즉 자필 원고가 남아있는 <노르웨이의 숲>까지의 원고와 비평집, 해외 원서 그리고 무려 2만장이나 되는 레코드를 와세다 대학에 기증한다는 내용입니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원고는 코단샤 출판사에 있을 거라고 얘기하네요. 이 자료들을 모아 문화 교류 및 창작자의 연구에 일조를 하게될 가칭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의 구상안도 나왔다고 합니다. 기증은 내년 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네요. 기자회견의 일문일답을 정리해봤습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해외 번역본에 사인하고 있는 하루키


하루키 와세다 대학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계획 기자회견

-2018년 11월 4일 와세다 대학-


Q: 37년만에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루키: 37년 전에는 제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오모리 가즈키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던 때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이번 회견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저에게도 와세다 대학에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제 일이니까 저 스스로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자료의 기증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하루키: 더이상 집과 사무실에 둘 수 없을 만큼의 양이 되어버렸어요. 더이상 쌓게되면 발 디딜 틈이 없어질 것 같이 바닥이 엉망이 될 것 같아, 이제야말로 기증이나 수탁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자녀가 없기 때문에, 제가 죽으면 그 자료들이 다 흩어져 버리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Q: 언제부터 생각하게 되셨나요?


하루키: 결심하게 된 것은 한 4,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외국의 대학 등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을 해오다가 모교인 와세다 대학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이면 아무래도 멀리 있으니 불안한 마음도 있는게 사실이고요. 모교인 와세다 대학이 가장 안정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내용은 무엇인가요?


하루키: 약 반세기 동안 수집한 레코드가 만 수천 장 있습니다. 모두 열심히 모은 것이고, 지금도 제가 듣고 있는 거에요. 미래에도 귀중한 자료가 될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요. 책의 경우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제 작업과 관련한 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쓴 책과 번역한 책이 되겠네요. 다만, 저는 아직 살아있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웃음) 갑자기 한꺼번에 전부 옮길 순 없겠죠. 조금씩 차차 옮길 예정입니다. 처음엔 '하루키 기념관'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글세요 제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는 안되었습니다.(웃음)


Q: 가장 기억에 남는 자료가 있으시다면?


하루키: 아무래도, 첫 소설을 썼을 때가 아니지 싶네요. 자료를 정리하면서,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상신인문학상에 당선되었을 때, 문예지에 기고한 수상 소감문을 읽어 보았어요. 젊었던 그 때가 문득 그리워지더군요. 그런 자료는 저 역시도 좀 처럼 다시 읽을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볼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Q: 어떤 작품의 자필 원고를 기증하는 것인가요?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포함되나요?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원고는 당시 코단샤 출판사에 보냈기 때문에, 기증에는 포함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당시에 문학상에 응모하면서 보낸 거죠. 당시에는 수상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미련 없이 복사해 두지 않고 원본을 보냈답니다.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면, <노르웨이의 숲> 원고가 아닐까 싶네요. 당시에 유럽에 체류 중이었고, 대학 노트에 써내려 갔었거든요. 노트가 상당히 쌓여 있답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초고라는 의미에서 귀중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게 집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 집에 있다면 기증하겠습니다. (웃음)


Q: 편지도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형태의 편지인가요?


하루키: 저도 누구와 주고 받은 편지이고 내용이 무엇인지 세세히 기억은 안나네요. 애증 관계라던지 그런 내용은 없을 겁니다. (웃음)


Q: 젊은 이제 막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기대를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문학이 가지는 힘이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하루키: 소설의 중요한 힘 중 하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 가기만 한다면, 언어를 넘어 서로 교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는 인터넷상으로 가치가 교감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기 혹은 혁신적인 돌파구가 되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젊든 나이가 많든 관계없이 그런 이야기의 힘을 믿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아직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이런 힘은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Q: 자필 원고의 세부 내역도 알 수 있을까요?


하루키: 1988년 <댄스댄스댄스>를 쓰기 시작할 때 부터 PC에 워드프로세서로 썼기 때문에, 그 이전 원고들 즉 1987년 <노르웨이의 숲>까지 입니다. 


Q: 와세다 대학교는 얼마만에 오신건가요?


하루키: 2007년 쓰보우치 대상 시상식때 오고 처음이네요. 그 이후 거의 오지 않았어요.


Q: '무라카미 라이브러리'가 어떤 장소가 되었으면 하시나요?


하루키: 제 자신의 와세다 대학 시절을 곱씹어 보면, 학교 강의실이나 집 또는 아르바이트 이외의 특별한 장소가 있는 것이 좋았답니다. 제게는 시나리오를 무한정 볼 수 있는 쓰보우치 연극 박물관이었죠. 수업은 들어가지 않아도 대학교안에 그런 기분 좋은 장소가 있으면 매우 흥분되는 일이 아닐까요? 소설을 쓰면서 많게는 5번 정도까지 수정 작업을 거치는데 그런 제 창작 과정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지만, 연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답니다. 더 나중이 되겠지만, 장학금도 주고, 세미나나 콘서트도 열고 싶습니다.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요. 문학과 문화가 교류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Q: 무라카미씨에게 외국문학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하루키: 저는 10대 부터 계속 외국 문학을 읽어 왔습니다. 학창 시절 창문을 열고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다랄지, 다른 풍경에 눈을 담그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것은 부모님이 일본 문학 교사였던 이유도 있고, 부모님이 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죠. 당시 고베에 살며 외국 서적을 읽고 외국 문학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죠. 하지만 반대로 소설가가 되고 나서는, 일본 문학을 읽게 되었답니다. 또한 외국 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즉 다른 언어로 등가 교환하는 작업도 굉장히 좋아했어요. 지금도 물론 좋아합니다. 번역은 일로 생각되지 않아요. 취미와도 같은 거죠.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번역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언어가 등가교환 된다는 인식이 있을 뿐, 새롭게 제가 글을 쓰는 느낌이죠. 언어의 등가 교환으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우 흥분되는 일이죠. 일본의 문예계에만 갇혀 있으면 아무래도 질식해 버리고 말지 않았을까요.


Q: 기증 자료에 포함된 레코드가 매우 흥미롭네요. 


하루키: 음, 여전히 제가 듣고 있는 것도 있어서 당장 전부를 기증할 순 없지만,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에서 그 레코드들을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책은 제가 집념이 덜한건지는 몰라도 곧잘 팔아 버리는데, 레코드만은 모으고 있습니다. 


Q: 음악이 소설에 미친 영향은 얼마나 될까요?


하루키: 영향을 정확히 수치화 할 순 없겠지만, 새벽 4시반 정도에 일어나 전날 미리 준비해 둔 레코드를 듣습니다. 소풍 전날 처럼 미리 들을 음반을 준비해두죠. 그것을 들으면서 일을 하는 것이 여전한 즐거움입니다. 


Q: 37년만의 기자회견 감상은 어떠신가요? 


하루키: 더 까다로운 질문이 나오면 어쩌지 걱정도 했는데, 모두 친절하고 좋았습니다. 한 명 정도는 부정적인 질문을 할 법도 한 데 말이죠. (웃음)


*이상 산케이 신문에서 기사화한 일문일답의 내용이었습니다. 하루키가 매우 기분 좋은 웃음을 뒤로하고 회견장을 나갔다고 하네요. 산케이 신문의 기사에는 나와있지 않은 조각조각의 회견 내용들도 모두 포스트에 녹였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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