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1일 부터 학기를 시작하는 일본에서 하루키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하루키의 모교인 와세다 대학교 21년 입학식에 하루키가 등장한 것인데요. 18년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발표 기자 회견 이후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났습니다. 모교인 와세다 대학의 행사에 참석한 것은 2007년 와세다 쓰보우치 대상 제정 첫 해, 초대상을 수상하여 시상식에 참석한 이후 2번째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키가 수학한 문학부와 문화구상학부의 입학식에 참석한 하루키는 작가로서 40년 넘게 예술 분야에 공헌한 것을 인정 받아 이번 예술 공로 표창을 받게 되었고요. 와세다 대학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표창장'에는 프린스턴 대학, 터프츠 대학, 하와이 대학 등 해외 각국의 대학으로 부터 예술 훈장을 받은 이력도 소개하며, 이번 예술 공로 표창자로 선정된 근거에 대해 얘기하기도 합니다. 하루키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들어 보시죠. 이야기꾼으로서 살아 온 자신의 사명을 후배들이 꼭 이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이렇게 절실하게 전해지는 것은 처음 인 것 같습니다.
- 머리로 생각하는 소설은 재미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직 많은 일들이 좀 처럼 안정되고 있지 않은 세상이지만, 이렇게 올 해의 새로운 출발을 다함께 축하하는 일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으로 부터 50여년전인 1968년 본교의 문학부에 입학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특별히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라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학교를 졸업 하고 일상 업무에 매진하는 중에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기분에 사로 잡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소설가가 되어 있었답니다.
어떤 기운에 의해 뭔가에 이끌렸다고 할까요, 그건 저도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재학 중에 결혼을 해서, 결혼과 동시에 일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졸업을 나중에 하게 되었답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순서가 거꾸로 되어버렸던 거죠. 저와 같은 삶을 그다지 추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의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요, 제 생각에 소설가라는 것은 머리가 너무 좋아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소설은 머리 보다는 마음으로 써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치에도 밝아 소설을 소설 그대로 받아 들이기 힘들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머리로 생각해서 소설을 쓴다면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써야 좋은 소설이 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머리는 작동은 해야 할 겁니다. 필요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죠. 그래서 소설가는 수재나 우등생까지는 아닐 정도의 머리를 가지거나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지금 여기 계신 문학부와 문화구상학부 입학생 분들 중에서도 분명히 소설가가 되고 싶다라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이런 머리와 마음의 균형을 잘 찾아 내주시길 바랍니다. 와세다 대학은 그러한 작업을 해내기에 상당히 적합한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가라는 직업은 '횃불'입니다.
이번 가을에 와세다 캠퍼스 안에 국제 문학관(무라카미 라이브러리)이 오픈합니다. 이곳은 책이나 각종 자료, 레코드 컬렉션을 갖추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해 주길 원해 마련되는 공간입니다. 이 라이브러리의 모토랄까요, 입구에 내 걸고 싶은 말은 '이야기를 내려 놓고, 마음의 이야기를 하자'입니다.
이것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마음을 얘기하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일겁니다. 이것은 평소 자신의 마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실제 우리가 가진 수 많은 마음의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하나의 의식이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연못에서 끌어 올려진 물 한 컵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나머지 공간은 온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정말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 남겨진 마음입니다. 의식이나 논리가 아니라 더 넓고 큰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 마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알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자신을 진정으로 움직이고 있는 힘의 근원을 어떻게 찾아가면 좋을까요. 그 역할을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우리의 의식이 좀 처럼 읽어 낼 수 없는 마음의 영역에 빛을 쬐어 줍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소설의 형태로 바꾸어 비유적으로 떠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소설가가 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비유를 통해 예를들면 이런 것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것이 소설의 기본적인 기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시'라는 방식을 통해 한 단계 대체된 형태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역할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즉각적인 약물이나 백신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것을 빼 놓고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이 이유는 앞에서 얘기 했지만, 사회라는 커다란 체계에도 역시 마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과 논리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이 분명히 남게 마련입니다. 그런 지점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채워나가는 것이 소설, 문학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마음과 의식의 틈새를 메워가는 것이 바로 소설입니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것은 1천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여러 곳에서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마치 횃불 처럼 이어져 왔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 횃불을 이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또한 그것을 따뜻하고 소중하게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로서는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이 캠퍼스에서 충만한 대학 생활을 보내주세요.
*해당 연설 내용은 일본에서 릴리즈된 기사들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고요, 와세다 대학에 따르면 공식 연설 전문을 공개 예정이라고 하니 추후에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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