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라디오가 벌써 지난 10월 30일 방송으로 총 43회를 지나오고 있습니다. 18년 8월 첫 방송 이후에 정말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요. 올 초 부터는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 오후 7시 고정 편성이 되었답니다. 주요 시즌별, 이벤트별, 사회 이슈별로 테마를 정해서 꾸준히 방송을 진행 중입니다. 방송에 트는 음악들 선별 작업에 하루가 꼬박 소요 된다고 하네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반전 음악을 모아서 소개하기도 하였고요, 장소를 옮겨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에서 생방송을 하기도 했답니다.
올 초 그 동안의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하루키가 언급한 주요 코멘트를 정리하여 한 번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에 그 두번째로 첫번째 에피소드 방출 이후 방송을 통해 얘기한 본인의 에피소드, 청취자 사연 답변 등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했습니다. 포스팅 마지막에 차기 장편에 대한 힌트가 나오니 끝까지 읽어 주세요 :D 하루키는 라디오 방송 외 와세다 국제문학관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오픈 이후 낭독회, 연주회 등도 기획하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본 포스팅은 무라카미 라디오 22년 6, 7, 10월 방송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https://www.tfm.co.jp/murakamiradio/index_20221030.html
[무라카미 세간 이야기-2]
신요코하마역 앞에서의 사회 봉사
저는 한 번 운전 위반 점수가 누적되어 면허가 정지된 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면허를 회복하기 위해 반나절의 교육을 받은 후 사회 봉사라는 것을 했는데요. 사회 봉사가 뭔가 하면 바로 횡단 보도에서 깃발을 들고 횡단 신호를 알려주어 다가 오는 운전자들에게 주의를 주는 역할 이었죠. 저는 가나가와현 사람이기 때문에 신요코하마역앞에서 했고 사회 봉사 시간은 약 30분 정도 였어요.
그렇게 봉사를 하는 와중에 "어라? 무라카미씨 아닌가? 이런 곳에서 뭘 하고 계세요?"라며 누군가가 저에게 말을 걸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꽤 겁먹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사회 봉사를 마치고 운전 면허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답니다.
생각해보면 보행자는 횡단보도 앞에서 깃발로 수신호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보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다행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속도 위반에는 각별히 주의해주세요. 'Sensible Shoes'를 신는 것을 잊지 마세요.
무라카미 무슨
저는 아침 마다 집 앞을 달리고 있습니다만, 예전에 달리던 중에 2명이 걸어가는 아저씨들에게 불러 세워진 적이 있었답니다. 뭐 아저씨라고 해봤자 저보다 어리다고 생각되지만요. 그 2사람이 저에게 "이 근처에 무라카미 뭐라고 하는 작가가 산다던데. 아세요?"라고 물어왔어요. 그래서 저는 "음, 들은 적이 없네요."라고 말을 흐리며 그대로 도망쳤지만, 이런 건 정말 곤란하네요.
적어도 일부러 저를 보러 찾아오시는 거라면, 풀네임 정도는 제대로 기억해 오시길 바라겠습니다. '무라카미 무슨'은 없답니다. 잠시 무라카미 류씨의 집을 가르쳐 줄 까도 생각했지만...라고 하는 것은 물론 농담입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동네를 달리고 있으면 매일 보는 고양이들과 마주치곤 한답니다. "뭐야, 아침 일찍 부터 또 이 아저씨야."라고 하는 얼굴로 볼 수도 있겠지만요. 때때로 제가 부르면 와서 머리를 쓰다듬게 해준 답니다.
고시엔 구장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이어서, 진구 구장도 정말 좋아합니다만. 일본에서 가장 멋진 야구 구장이 어딜까 생각해보면, 역시 고시엔 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뭐랄까 특별합니다. 스코어 보드가 스크린으로 바뀌어서 유감입니다만, 보스턴의 펀웨이 구장 같이 옛 방식 그대로 두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죠.
저는 초등학교 시절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슈큐가와라고 하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요. 그 동네에서 고시엔까지는 자전거로도 비교적 금방 갈 수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자주 고시엔 구장엘 갔었죠. 특히 고교 야구의 외야석은 무료 입장이었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여름 방학의 여가를 보내기에는 최고 였답니다. 왕정치 선수가 와세다 실업고등학교 에이스로 우승할 무렵이었으니까,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이죠.
고시엔 구장에 입장하고 낡은 희미한 계단을 올라가면 눈 앞에 잔디의 초록색이 갑자기 펼쳐 집니다. 녹색 잔디와 새하얀 유니폼과 야구공, 그리고 푸른 하늘.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때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죠. 다른 구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에요. 그 때의 가슴 떨림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런면에서 돔구장은 취급하지 않아요. 전 가지 않는 답니다.
[청취자 질문 응답]
Q: 무라카미씨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실 수 있나요? 저도 음악과 책 모두 좋아하지만, 둘을 동시에 하는 것은 무리인데요. 좋아하는 음악 (클래식은 아닌 조금 시끄러운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려면, 둘 다 좋아하여 오히려 둘 다에 집중을 하지 못해 책의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되죠. (그렇다고 음악을 즐겼다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그래서 같은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읽게 된답니다. 그럼 책과 음악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되지 않냐라고 얘기하실 수 있겠지만, 뭔가 동시에 둘 다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다른 사람 보다 인생을 절반 빡에 즐길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 인생도 어느덧 반이 넘어가고 있는데요. 남은 인생을 조금은 안심하며 보낼 수 있도록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50대 남성, 도쿄도)
하루키: 저는 다소 진지하게 책에 집중하고 싶을 때에는 음악을 듣지 않아요. 둘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적당히 가볍게 책을 읽을 때에만 음악을 틀곤해요. 소설을 쓸 때에도 곧잘 음악을 틀어 놓을 때가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듣지 않아요. 제 등 뒤에서 가만히 울리고 있다라는 느낌 정도로 말이에요. 뭔가 뒤에서 울리고 있으면 격려를 받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번역 작업을 할 때는 제대로 음악을 들으면서 해요. 그래서말이지만, 이제 그만 번역일로 업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Q: 무라카미씨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나 꼭 남기고픈 것이 있으신가요? 얼마전에 젊은 여성으로 부터 질문을 받아 생각을 해봤는데요. 특별히 생각나지는 않았거든요. 이게 이상한 건가요? 좋아하는 레코드를 매일 들을 수 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습니다.
하루키: 죽기 전에 꼭 해두고픈 것. 저도 특별히 없네요. 옛날에는 '쌍둥이 소녀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뭐 특별히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그만 시들어 버린 것일까요. (웃음)
Q: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 대해 원작자로서 무라카미씨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무라카미씨의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처음 느낌은 세련되었다라는 느낌이었는데요. 그래서 일단 원작을 다시 읽어 봤답니다. 원작은 역시 무라카미씨 만의 블랙 유머와 세련됨을 느꼈답니다. 그런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이고, 시종일관 시리어스하다라는 평을 보고 아직 보지는 않았는데요. 무라카미씨는 분명 원작과 영화는 전혀 다른 창작물로서 즐기고 보셨을 거라고 상상이 되는데요. 타이틀이 원작 그대로이기도 하고, 무라카미씨가 원작에 담은 작중 의도가 영화에 그대로 나타났는지 등 무라카미씨의 본심을 듣고 싶습니다.
하루키: 영화 매우 즐거웠답니다. 오히려 원작과 내용이 달라진 것이 좋았어요. 전 그런 것을 좋아한답니다.
Q: 무라카미씨, 저는 '리얼'하게 '쿨'하게 살아가고 싶은데요. '리얼'이 무엇일까요? 무라카미씨의 책을 읽고 있으면, '리얼'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점점 '?'가 따라오면서 결국 이것저것이 혼재되어 이상하게 변해 버리는 느낌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있는데 처음엔 그런 제 자신이 좋았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사로서 제가 하는 일도 그렇고, 왠지 점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리얼'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죠. '리얼'하게 사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고요. 아직 '쿨'하지 못한 것 같아요. (웃음)
하루키: '리얼'하고 '쿨'하게 사는 것은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단지 입으로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웃음) 저는 연식이 오래된 야쿠르트 팬이지만, 관중석에서 우산을 흔들지도 않고 응원가를 부르지도 않아요. 혼자 조용히 가만히 그라운드를 바라 보고 있죠. 필립 말로우 처럼 리얼하고 쿨하게 말이에요. (웃음)
Q: 소설 집필 강좌를 개최해 주셨으면 합니다. (20대 남성, 미야기현)
하루키: 음.. 저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법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대체로 제멋대로인 인간인지라, 저 스스로 소설을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소설을 어떻게 쓸까...같은 문제로까지는 좀 처럼 잘 설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랍니다. 그래서 문하생을 둔 적도 없고 클래스를 열어서 창작 지도를 한 적도 없어요.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한 적도 물론 없고요.
예전에 레이먼드 카버씨를 인터뷰 했을 때, 그는 뉴욕의 시러큐스 대학에서 창작과 교수를 몇 년 동안 지냈었는데요. '한 학기에 단편 소설 하나만 써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하나 이상은 쓸 수 없는 것이죠. 그 하나의 단편 소설을 한 학기에 걸쳐, 매주 제출시켰다고 합니다. 그것을 비평하고 조금씩 수정하며 연마해 가는 방식이죠. 그 얘기를 듣고 '아 과연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카버씨도 얘기하고 있지만, '몇 번이나 참을성 있게 다시 쓴다.', '어쨌든 충분히 시간을 들인다.'라는 것은 소설을 쓸 때 매우 소중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하세요.
Q: 독서를 할 때, 자신의 취향이 아닌 문장이나 내용의 작품이라고 느낀다면, 도중에 읽기를 그만두시나요? 아니면 가능한 끝까지 다 읽으시는 편인가요. (50대 남성, 도쿄도)
하루키: 예전에는 꽤 잘 참아 끝까지 읽는 편이었는데요. 최근에는 지루하거나 제 취향이 아니라고 느끼면 도중에 읽기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시간도 아깝고 눈도 피로하고 말이죠. 어린 시절 특히 10대 때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고 눈도 건강했고요. 그 당시에는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읽고 '좋았다.', '재미있었다.'라고 생각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많아지네요. 그렇게 하면 독서에 있어서 실망하는 경우도 없어지고요.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편해졌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유행하는 것'에 대해 흥미가 없어지는 점이에요. 지금 어떤 책이 팔리고 있는지, 어떤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지 아무래도 상관없어져 버리죠. 그것은 꽤 편하다고 하면 편할지도 몰라요. 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Q: 무라카미씨가 답변을 하실 수 있는 범위에서 부탁하고 싶습니다만 (아마 전 세계의 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현재 장편 소설의 집필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미 쓰고 계시는 중인지, 아직 구상 단계인지 궁금해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만약 뭔가 시작이 되고 있는 거라면 가르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나가와현 45세 남성)
하루키: '알고 싶어서 밤에도 잠을 잘 못자요.' 라는 말이 왠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던가, 지구 온난화와 비교하면 그다지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쓰고 있는 소설, 특히 장편의 경우엔 어느 정도 명확한 형태를 취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입밖에 내지 않는답니다. 쓰고 있다고도, 쓰지 않는다고도 얘기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두었답니다. 이것은 뭐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수단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서프라이즈 처럼 신문에 신간 광고가 실리게 될 수도 있죠. 죄송합니다만, 그 날을 기대하며 차분히 기다려주세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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